프로야구에 나타난 초읽기…피치 클록 압박감에 투수들 휘청휘청

(수원=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5! 4! 3! 2! 1!"

프로야구 LG 트윈스와 kt wiz의 2024시즌 시범경기 개막전이 열린 9일 수원케이티위즈파크.

LG 원정 관중은 팀이 5-2로 앞선 9회초 공격 때 목청 높여 숫자를 외치기 시작했다.

마치 우주 로켓의 카운트 다운을 연상케 했다.

조급함을 느낀 kt 투수 김영현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김영현은 1사 1루 김주성 타석 볼 카운트 3볼 1스트라이크에서 급하게 공을 던지다 볼넷을 내줬다.

계속된 2사 1,2루 이재원 타석 땐 폭투를 범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올 시즌 피치 클록을 시범 도입했다.

피치 클록은 경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투구 혹은 타격 준비 과정에 시간적 제한을 둔 규칙이다.

투수는 주자가 있을 때 23초 안에, 주자가 없을 때 18초 안에 공을 던져야 한다.

타자는 8초가 표기된 시점에 타격 준비를 완료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투수는 볼, 타자는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게 된다.

다만 일부 팀들은 피치 클록을 도입하면 선수들의 부상 위험이 커진다고 반대 목소리를 냈고, 이에 KBO는 올해 전반기까지 피치 클록을 시범 운용하기로 했다.

피치 클록을 어긴 선수들은 주심으로부터 구두로만 경고받는다.

시범 운용 기간 경기력에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였던 피치 클록은 시범경기 첫날 반향을 일으켰다.

홈 플레이트 뒤와 외야 전광판 밑에 설치된 전자시계는 선수들에게 상당한 압박감을 줬다.

해당 시간 안에 공을 던지지 않은 선수들은 관중으로부터 야유를 들었다.

아울러 관중들은 입을 모아 초읽기를 하며 상대 팀 투수를 압박했다.

이런 환경은 프로야구 정규리그 개막 후 선수들에게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투구 템포가 느리거나 경험이 적은 투수들, 정신력이 약한 선수들에겐 치명적일 수도 있다. 포스트시즌에선 여파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각 구단은 지난 겨울 각기 다른 방식으로 피치 클록을 준비했다.

LG 트윈스는 피치 클록 도입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제한된 시간 안에 공을 던지고 타석에 들어서는 훈련을 마쳤다.

아울러, 염경엽 LG 감독은 피치 클록의 정식 도입 여부와 관계없이 최선을 다해 이를 준수하라고 선수들에게 주문했다.

반면 몇몇 구단은 선수 부상 문제를 고려했다. 투수들에게 피치 클록과 관계 없이 본인의 페이스대로 공을 던지라고 지시했다.

각 구단의 판단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정규리그 개막 후 갈릴 것으로 보인다.

피치 클록은 시범 운용 첫날 개선해야 할 점도 노출했다.

이날 LG-kt전은 피치 클록 장비가 3회까지 작동하지 않아서 4회부터 적용했다.

한편 이날 경기엔 트래킹 시스템과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스트라이크-볼을 판별하는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도 처음 선보였다.

일명 '로봇 심판'으로 불리는 ABS는 경기 시간을 끌 수 있다는 주변의 우려와 달리 깔끔하게 운용됐다.

ABS는 각 경기장에 설치한 카메라로 투수가 던진 공의 궤적을 파악한 뒤 스트라이크 혹은 볼 판정 내용을 이어폰을 낀 심판에게 음성 신호로 전달하는데, 그 과정이 실시간으로 빠르게 이뤄져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볼 판정에 관한 시비도 사라졌다.

LG 외국인 투수 디트릭 엔스는 3회말 김상수와 풀카운트 승부 끝에 몸쪽 꽉찬 직구를 정밀하게 던진 듯 했으나 볼로 판정돼 볼넷이 됐다.

엔스는 아쉬움을 표현했으나 ABS 판정에 수긍했다.

엔스는 후속 타자 배정대를 상대로 볼카운트 2볼-2스트라이크에서 다소 높아 보이는 바깥쪽 커브를 던졌는데, 이번엔 스트라이크로 판정돼 루킹 삼진을 잡기도 했다.

배정대 역시 미간을 찌푸렸으나 판정 결과를 군말 없이 받아들였다.

ABS가 판단하는 스트라이크 존의 상하 기준은 각각 타자 신장의 56.35%, 27.64%로 설정하며, 중간 면과 끝 면 기준을 모두 통과해야 스트라이크로 판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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