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고졸 선수에서 최고 GK로…김경희 "조용히 빛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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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FC 위민 우승 일등 공신 "지분 30%…1차전 무실점은 컸죠. 하하"
A매치 데뷔전서 캐나다에 1실점…"여태껏 가장 강한 팀…앞으로 더 보여드릴게요"
'개척자' 김경희 "책임감 느껴…앞으로 나와 같은 선수 많이 발굴됐으면"
(서울=연합뉴스) 설하은 기자 = "조용히 빛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순수 고졸' 출신 번외 지명으로는 역대 처음으로 여자실업축구 WK리그 무대를 밟아 올해 최고의 골키퍼로 우뚝 선 수원FC 위민의 김경희(21)가 이렇게 말했다.
김경희는 1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2024 한국여자축구연맹 시상식에서 WK리그 올해의 골키퍼상을 받았다.
김경희는 대학 경험 없이 고등학교 졸업 직후 WK리그에 데뷔한 최초의 선수다.
우리나라 여자축구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거나 중퇴한 뒤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실업 무대를 밟는 게 '정도(正道)'다.
대학 진학에 실패한 뒤 '드래프트라도 넣어보라'는 주변의 조언을 들은 김경희는 작은 기회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2021년 열린 2022 W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 나섰고 번외지명으로 창녕WFC에 입단했다.
1∼4차까지 정식 순번 지명이 진행되는데, 김경희는 무려 8차 지명에서야 극적으로 실업팀 유니폼을 입었다.
'후회하기 싫어서' 드래프트 지원서를 넣었던 김경희는 올해 수원FC의 챔피언결정전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는 경주 한수원과의 플레이오프(PO) 승부차기에서 상대 1번 키커 장슬기의 슈팅을 막아내 챔피언결정전 진출을 제 손으로 이뤄냈다.
챔피언결정 1, 2차전에서 활약도 엄청났다.
최강의 공격력을 자랑하는 화천 KSPO를 상대로 1차전에서 무실점으로 틀어막아 2-0 승리에 기여했고 우승의 7부 능선을 넘었다.
2차전에서도 게임 주도권을 쥔 KSPO가 무더기 슈팅을 쏟아냈으나 김경희가 2실점으로 버틴 덕에 수원FC는 1, 2차전 합계 3-2로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김경희는 "그래도 1차전 무실점이 컸다고 생각한다. 팀 우승에 내 지분은 30% 정도는 되는 것 같다"며 민망한 듯 웃었다.
WK리그에 빠르게 녹아든 김경희는 20세 이하(U-20) 대표팀에서 존재감을 한껏 발휘했고, 지난해부터는 수원FC 위민 유니폼을 입고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여줘 콜린 벨 감독의 부름을 받고 성인 대표팀에도 승선했다.
고대하던 A매치 데뷔전은 약 일주일 전 이뤄졌다.
신상우호에 승선한 김경희는 지난 4일 세계 랭킹 6위 캐나다와의 평가전에서 선발 골키퍼 장갑을 꼈고, 상대의 일방적인 공세를 선방해내며 1실점으로 막았다.
김경희가 빠진 후반전, 대표팀은 4골을 더 실점하며 무너졌다.
캐나다를 두고 "여태 붙어본 팀 중 가장 강한 팀"이었다는 김경희는 "실력 차가 엄청 났고, 생각보다 상대 스피드가 엄청 빨랐다. '여기서 슛을 쏜다고?'라고 생각했던 위치에서 슛을 때려 당황스럽기도 했다"면서도 "그래도 데뷔전치고는 잘 해결한 것 같다"고 자평했다.
김경희는 김정미(40)의 뒤를 이을 대표팀 차기 1번 골키퍼라는 평가도 받는다.
"아직은 좀 부담스러운 것 같다"며 손사래 친 김경희는 "일단 데뷔전을 치르고 A매치를 경험했다는 게 내게 가장 큰 수확이 됐다. 앞으로 보여줄 게 정말 많다. 겸손한 자세에서 또 시작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보통'의 여자축구 선수들과는 남다른 길을 걸어온 김경희다.
고졸 출신 최초의 WK리그 선수이자 이젠 대표팀 주전 수문장을 바라보는 김경희는 '개척자'로서 책임감을 짊어지고 있었다.
김경희는 "책임감을 당연히 느끼고,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내가 해야 할 것도 많다"며 "좋은 후배 선수들도 많다. 앞으로 나와 같은 선수들이 많이 발굴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마침 이날 시상식에 앞서 열린 2025 WK리그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는 도전장을 낸 50명 중 24명이 실업팀 지명을 받았다.
24명 중 10명은 1∼4차 지명이 아닌 김경희와 같은 번외지명자다.
순탄치 않은 길을 경험한 김경희는 실업팀 지명을 받지 못한 후배들에게 "당연히 순위권 지명이나 번외로도 WK리그에 오고 싶을 거다. 그런 선택을 받지 못하더라도 자존감을 잃지 않고 끝까지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