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양심선언'하고 졌던 셰플러에 설욕한 라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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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권훈 기자 =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찰스 슈와브 챌린지에서 우승한 데이비스 라일리(미국)는 27일(한국시간) 최종 라운드에서 세계랭킹 1위 스코티 셰플러(미국)와 맞대결을 펼쳤다.
라일리와 셰플러는 1996년생 동갑이고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지역 이웃사촌이지만,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나 다름없다.
이 대회에 출전하기 전까지 라일리는 PGA투어에서 고작 1승을 올렸을 뿐이고 세계랭킹은 250위에 불과했다. 페덱스컵 랭킹은 151위.
셰플러는 올해에만 마스터스와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 RBC 헤리티지 등 메이저와 메이저에 버금가는 특급 대회에서만 4번 우승했다.
세계랭킹 1위에 페덱스컵 랭킹 1위, 그리고 상금랭킹도 굳건한 1위다.
찰스 슈와브 챌린지에서 셰플러는 재작년 준우승에 이어 작년에는 공동 3위에 오를 만큼 코스와 궁합도 잘 맞는다.
라일리가 4타 앞섰지만, 최종 라운드의 중압감과 셰플러라는 당대 최고 선수와 맞대결에서 느끼는 긴장감을 이겨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하지만 라일리는 난코스에서 침착한 경기 운영으로 4라운드 내내 셰플러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았다. 보기 4개를 적어냈지만, 고비 때마다 잡아낸 버디 4개로 타수를 지킨 끝에 우승했다.
라일리가 무너지지 않자 셰플러는 외려 1타를 잃고 5타차 2위에 만족해야 했다.
라일리는 "최종 라운드에 나설 때부터 세계랭킹 1위와 대결이라면 마지막 홀까지 힘겨울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세계 1위 선수가 목을 조여오면 샷이 편할 리 없다"면서도 "셰플러와 같은 타수로 출발한다고 생각하고 그를 이겨내려 했다. 끝까지 버텨낸 게 자랑스럽다"고 자신을 칭찬했다.
셰플러는 "초반에 그를 압박할 만큼 잘하지 못했다. 그는 내가 따라잡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정말 훌륭한 우승"이라고 라일리에게 찬사를 보냈다.
11년 전 둘의 맞대결도 새삼 주목받았다.
라일리와 셰플러는 2013년 US 주니어 챔피언십 결승에서 맞붙었다.
당시 라일리는 16번 홀 그린에서 버디 퍼트를 하려고 어드레스를 했다가 볼이 살짝 움직인 사실을 경기위원에 자진 신고했다. 결국 그는 3홀 차로 졌다.
셰플러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던 일이었다"고 당시 라일리의 양심선언을 떠올렸다.
둘은 작년 델 테크놀로지스 매치 플레이 조별리그 1차전에서도 맞붙었는데 당시 디펜딩 챔피언이었던 셰플러는 라일리를 1홀 차로 꺾었다.
최종 라운드를 앞두고 "셰플러와 오랫동안 알고 지냈고 주니어 때나 대학 때 함께 경기했다. 이전 대결과 다른 결과가 나올지 지켜보자"고 했던 라일리에게는 멋진 설욕전이 된 셈이다.
라일리는 지난해 2인1조 경기인 취리히 클래식에서 생애 첫 우승을 따냈다.
당시 파트너 닉 하디(미국)에게도 생애 첫 우승이었다.
이날 라일리가 18번 홀에서 챔피언 퍼트를 넣는 순간을 하디는 그린 옆에서 지켜보고 친구의 두 번째 우승을 축하했다.
이날 하디는 3시간 전에 경기를 끝내고 라일리를 응원했다.
라일리는 "우리 우정은 특별하다. 사실 1, 2라운드를 함께 돌았다. 확실히 편했다. 아마 1, 2라운드를 잘 쳤던 가장 이유였을 것"이라며 하디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라일리에게 이번 우승이 더 특별했던 건 대회 직전 누나의 암 수술이었다.
대회 일주일 전 라일리의 누나 캐롤라인은 뇌암 진단을 받고 뉴욕에서 수술을 받았다.
라일리는 수술이 무사히 끝났고 조직검사에서 더는 전이가 없다는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스윙에 집중할 수 없어 기권할까 생각도 했다.
라일리의 부모는 캐롤라인을 돌보느라 이날 라일리의 우승 장면을 TV로 봐야 했다.
라일리는 "솔직히 지난주 내내 정신이 없었다. 누나를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무서웠다. 하지만 부모님은 내가 출전해서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해줬다. 내게는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라일리는 이번 우승으로 우승 상금 163만8천 달러와 2025년까지 PGA투어 카드를 보장받았고 이번 시즌 남은 특급 지정 대회 메모리얼 토너먼트와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출전권도 얻어냈다.
또 페덱스컵 랭킹은 55위로 올라섰고 세계랭킹도 78위로 껑충 뛰었다.